고대 로마시대의 도시유적 중에 포로로마노는 로마제국의 중심지였던 만큼
가장 웅장한 유적이어야겠지만 이제 많은 부분이 유실되고 그 흔적을 간신히 알아볼 수 있는
곳이다보니 막상 로마를 방문하는 분들도 자세하게 보지 않고 지나치는 경우가 많습니다.
터키의 에페스(관련글 가기)와 폼페이(관련글 가기)가 번창하던 시절 로마제국의 중심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었는지를 현재 남아있는 유적을 통해 상상해보려고 합니다. 이웃에 있는
콜로세움도 당시의 모습을 많이 잃었지만 동시대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므로 이 글에서
함께 소개하겠습니다 =3 =33
캄피톨리오 광장 쪽에서 본 늑대상입니다. 아래쪽에 쌍동이가 젖을 빨고 있는 모습이지요...
로마 건국신화에 보면 군사와 전쟁을 주관하는 신 마르스와 인간 사이에서 태어났다는
쌍동이 형제 레무스와 로물루스 중에서 로물루스에 의해서 기원전 753년에 도시국가 로마가
건국되었다고 합니다. 처음엔 캄피돌리오 언덕과 팔라티노 언덕에서 자리잡기 시작해서
테베레강 주변의 7언덕에 정착한 부족들이 로마를 형성하게 되지요.
기원전의 왕정시대와 공화정시대를 거치는 동안 팔라티노 언덕과 다른 언덕들 사이의
편편한 땅에 시장이 형성되고 포룸이 만들어져서 시민들이 모이는 '공회장'으로 발전했던 곳을
현재 포로 로마노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기원후 제정시대 황제들은 이곳이 비좁다는 이유로
주변의 다른 곳에 공회장을 확장 또는 신축하였고, 이곳은 서로마제국 멸망과 함께 잊혀졌다가
다시 발굴, 복원작업이 진행되고 있는 고대도시 유적입니다.
캄피돌리오 언덕의 세나토리오 궁 쪽과 콜로세움 쪽에 포로 로마노의 양쪽 출입구가 있는데
저는 로마에 갈때마다 양쪽 방향 한쪽에서 각각 산책을 시작했었습니다. 2003-2005에 담은
사진들의 배열은 세나토리오 궁 뒤의 테라스에서 시작하는 것으로 조합을 했습니다.
여러번 방문한 사진들을 합친 거라서 날씨와 계절이 들쭉날쭉한 점 이해해주세요...^^;;
지금 포로로마노가 내려다 보이는 위치는 기원전 술라에 의해 만들어진 국가 문서보관소
자리에 건물이 증축된 세나토리오 궁 아래 테라스입니다.
테라스에서 비탈길을 내려오면 사투르노 신전의 기둥 8개만 남은 폐허가 보입니다.
그리고 셉티미우스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이 위풍당당하게 자리하고 있고요...
이 개선문 아치를 통과해서 포로로마노 안으로 들어서게 됩니다 =3 =33
콜로세움 앞에 있는 것만 로마 개선문으로 알고 있는데 로마에는 개선문이 세 개가 있습니다.
바로 위 사진에서 뒤돌아본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서기 203년 완성)과 티투스 황제의
개선문(81년, 예루살렘 정복 기념), 그리고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315년)이 있어요.
언덕길을 내려오면 왼쪽에는 곧바로 원로원 건물이, 오른쪽으로는 신전들 폐허 아래로
이렇게 곧게 뻗은 산책로가 이어집니다. 로물루스의 무덤이라고 불리는 장소도 있는데
사진을 담아두지는 않았네요...
이 근처에는 궁중집회를 할 때 연단으로 사용하기 위한 로스트리들이 있었다고 합니다.
부르투스와 안토니우스의 연설을 듣는 군중들을 상상해볼 수 있는 곳이예요.
아래에서 위쪽으로 바라본 사진의 개선문 오른편 구석에 있는 건물이 원로원 유적이예요.
기원전 670년에 처음 만들고 증축을 계속해서 303년에 마지막으로 손질을 했다는데요,
건물 원형이 잘 보존되었다고는 하지만 바로 뒤에 교회들이 가까이 지어져서 옛 모습과는
조금 다른 것 같습니다. 원로원 제도는 로마제국에서 가장 오래 유지되었던 정치형태지요...
공화정시대(기원전 510년에서 29년까지)에는 원로원이 국가의 전권을 장악하고 있었는데
시저(카이사르) 사후 제정시대에는 원로원의 권한이 점점 축소되었다고 합니다.
참, 이 원로원 건물 앞에서 시저가 암살을 당했었지요, 건물 내부는 이렇게 생겼어요.
상당히 큰 하나의 공간인데 바닥은 대리석 모자이크 장식이 되어있고요 벽에서 떨어져나온 듯한
부조들이 양옆으로 놓여져 있었습니다. 기원전 29년 시저가 "부르투스, 너마저..."라고 하며
이 바깥쪽에서 운명을 달리했다고 들은 것 같습니다.
포카 황제의 기념원주(가장 늦게 서기 608년에 만든 기념물) 옆으로 포로로마노 유적이
계속 이어집니다. 산책에 시간이 오래 걸리는 곳이예요. 더운 여름에는 좀 힘들기도 하지요...
멀리 언덕 앞에는 아름다운 세 기둥만 남아있는 신전유적이 있습니다.
카스토르와 폴룩스의 신전(기원전 484년 건립)이라고 안내자료에 나와있네요...
이곳은 믿거나말거나... 기원전 44년 줄리우스 시저의 유해를 화장했다고 알려진 장소입니다.
수십번 칼로 찔려서 사망한 황제의 시신을 이곳에서 처리하고, 후계자 옥타비아누스(나중에
아우구스투스 황제가 됨)가 시저의 신전을 세웠었다고 하는데 지금은 폐허가 되었어요.
기원전 29년에 세웠던 그 신전은 신격화된 인간을 숭배하기 위해 만든 최초의 신전이라는데요...
씨저의 시신을 화장할 때 안토니우스가 그 유명한 추도 연설을 했었지요. @.@
팔라티노 언덕 아래에 있는 베스타 신전의 유적은 꺼지지 않는 성화를 숭배하던 곳입니다.
'성화'란 로마제국과 가정의 영구불멸을 상징한다고 하는데, 그 성화를 지키기 위해서
귀족가문에서 뽑은 처녀 제관들은 순결을 지키며 이 업무에 헌신했다고 합니다.
신전 옆, 언덕의 아래쪽에는 제관들이 거주하던 집터라고 하네요...
참고로 이 사진은 2003년에 담은 건데 팔라티노 언덕을 뒤편(서쪽)에서 바라본 거예요.
포로 로마노의 바깥, 대전차 경기장(치르코 막시모)을 내려다보는 길가에서 보는
언덕의 모습이 마침 해질녘 햇빛을 받아 아름답지요...
팔라티노 언덕은 로마 건국시기부터 가장 중요한 거주지이고 제정시대에 황제들이 살던
지역입니다. 언덕 위에는 황제의 거주공간과 정원들이 자리하고 있는데 아직 안올라가봤네요...
다시 포로로마노 안으로 돌아왔습니다. 시저의 신전터를 바라보고 있는 원주들이 아름다운
건물은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의 신전이예요. 시저 시대의 안토니우스가 아니고 황제였던
안토니누스 피우스의 부인 파우스티나를 신격화해서 원로원에서 신전을 지었다고 하고요,
황제의 사후에는 역시 그에게 바치는 신전이 되었다는데 중세(11세기)에 이 건물을 활용해서
성당으로 개축해서 사용하고 있다고 합니다. @.@
바로 옆에 있던 중세기의 성당도 하드리아누스 황제 때의 비너스 신전 폐허에 세웠었다지요...
포로 로마노 유적 뿐만아니라 곳곳에서 나타나는 현상이지만 종교가 바뀔 때마다 파괴가
있었고요, 예전의 건물에 대해 그 기능을 비웃듯 다른 기능으로 개축하는게 안타깝습니다.
하지만 역사적으로 어디서나 어느시대나 있었던 일이지요... -.-
팔라티노 언덕의 바로 아래쪽으로는 로마자가 새겨진 비석들과 잘 모르는 유물들이
여기저기 흩어져 있지만 다 기억하지 못하겠습니다. 18세기에 발굴이 시작되기 전에 이곳은
흙 속에 덮여있었다고 하는데 이미 오래전에 건물들이 파괴되고 폐허가 된 곳인데다
돌들을 다른 건물 특히 성당들의 건축이나 집 정원 장식용으로 가져가는 바람에
지금은 완전하게 짜맞출 수 있는 건물이 없나 봅니다. 초석과 기둥 일부만 곳곳에...
콘스탄티누스 공회당 건물이 웅장했던 것 같고요, 그 외에도 큰 건물에 대해서는 역사 기록이
남아있어서 그나마 모습을 상상할 수 있다고 합니다. 웅장하고 화려한 공회장과 신전들이
자리했던 시대의 포로 로마노는 위풍당당했겠지만, 이후 로마가 큰 도시로 확대되고
인구가 150만명에 달하게 되면서 이곳이 비좁다는 이유로 점차 쇠락하였고, 기독교의
전래와 공인 이후에는 신전들이 폐허가 되면서 역사 무대에서 퇴장을 했던 것 같습니다.
안토니누스와 파우스티나의 신전을 다시 돌아봅니다... 멀리 캄피돌리오 언덕에 있는
세나토리오 궁에서부터 세베루스 황제의 개선문을 거쳐 이곳까지 걸어온 거예요.
포로 로마노를 굽어보고 있는 팔라티노 언덕의 저택들, 실제로 황제들이 거주했었다네요.
공화정 시대에 시민들의 거주지였던 곳인데 제정시대에는 정치활동의 중심지가 되었다고요.
황제궁과 공공건물들이 자리했었고, 로마의 부가 축적되자 사치를 누리던 곳이라고요...
군의 정치개입, 가혹한 과세정책, 지도층과 시민들의 도덕적 해이, 엄격한 신분제도 등이
로마의 쇠퇴를 재촉했고 서기 476년에 로마제국이 멸망하게 되면서 포로 로마노는 잊혀집니다.
콜로세움으로 향하는 출구(입구) 쪽에 있습니다. 이 기둥들도 신전이 있었던 자리인 듯...
바깥쪽 길은 '공회장 가도'라고 불리는데 우선 콜로세움에 갔다가 다시 그 길을 따라가면서
포로 로마노를 바깥쪽에서 본 모습을 전해드릴께요.
콜로세움도 역시 폐허의 하나이지만 참으로 유명한 로마유적지예요.
포로로마노와 동시대에 존재했던 거대한 공연장(?)입니다.
원래 이부근은 빈민구역이었는데 서기 64년 로마대화재 이후 네로 황제가 '도무스 아우레아'
라고 부르는 자신의 궁전을 지었던 장소라고 합니다. 궁전과 정원, 신전, 목욕장을 만들고
모의해전을 관람하기 위해 큰 인공호수를 만들었다는데 68년에 폐위되면서 파괴되었다네요.
포로로마노와 콜로세움 사이에는 유명한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이 있습니다.
이 개선문이 세워지기 직전 313년에 콘스탄티누스 대제가 밀라노 칙령을 통해 기독교를
공인했었지요. 언젠가 개선문들에 대해서는 따로 좀더 자세하게 소개하겠습니다.
네로황제가 만든 인공호수 자리에 콜로세움을 세웠다는데 콜로세움이라는 이름은 그 앞에
있었던 황제의 거대한 동상의 이름 '콜로쏘'(콜로수스 = 거대함)에서 유래되었다고 하네요.
로마에는 볼거리가 워낙 많아서 짧은 시간 머물 경우에는 콜로세움의 내부로 입장하지
않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의 관광객들에게 호기심을 주는 장소인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헐리웃 영화에서 보여주는 이미지들 덕분에 선입견을 많이 갖고 있는 곳이니까요...
기원후 72년 공사를 시작해서 8년후 티투스 황제 때 완성된 웅장한 건축물인데 약 5만명의
관중을 수용할 수 있었다고 합니다. 티투스는 예루살렘을 정복한 후 포로들을 데리고
로마로 돌아왔는데 그중에 4만명을 콜로세움 축조공사에 동원했다고 하지요 @.@
콜로세움 내부는 여러 층으로 되어있고 계단과 엘리베이터로 오르내릴 수 있습니다.
꼼꼼하게 둘러보려면 시간이 많이 걸리는데 어느 방향에서나 대략 비슷한 풍경을 만납니다.
거대한 원형극장 유적으로 많은 부분 허물어졌고(돌을 빼내서 그동안 건축자재로 재활용)
객석과 무대는 그 기둥과 벽만 남아있는 셈이어서 기묘한 모습을 하고 있어요.
2층에서 한바퀴 돌아보며 콜로세움 내부를 여러 방향에서 보았습니다.
가운데에 길처럼 보이는 것은 무대의 일부를 복원한 겁니다. 전체 무대가 덮여있었는데
지금은 지하실들이 다 드러나 보여요. 객석도 마찬가지로 각 구역을 구분하는 기둥벽들만
남고 대부분의 관중석은 다 파괴되었습니다. 대리석으로 만들었던 황제의 자리만 있어요...
중간중간에 테라스로 나가는 이런 통로가 있는데, 어디나 아치형 구조예요...
원래는 모든 구조물이 석조였다고 하고요, 보수공사를 하면서 벽돌로 일부 개축을 했다네요.
콜로세움 하면 검투사 경기를 상상하게 됩니다. 전쟁포로들 중에 노예로 팔려가지 않고
공공 노역에 동원되지 않은 사람들중에 선발한 검투사들은 시합에서 일정한 수의 승리를 하면
자유 신분을 얻을 수 있었다고 하네요... 검투사들이 경기를 벌였던 경기장 바닥에는 나무로
마루가 깔려있고 그 위에 모래로 덮었는데 그 바닥 아래 지하실에는 검투사 대기실과
맹수들의 우리, 경기에 필요한 도구들의 보관창고 등이 있었다고 하고요.
검투사 경기 외에도 맹수 사냥시합(무대에 숲과 언덕을 조성)도 했었고, 완공후 초창기에는
모의해전을 공연하는 장소로도 사용되었다고 하는데 물을 채우고 빼내는 작업이 번거로와서
영구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모의해전장은 다른 장소에 다시 만들었다고 하니 원... @.@
콜로세움에서의 공연(?)은 주로 날씨가 좋은 계절에 했는데 관중들을 햇빛으로부터 보호하는
대형 천막지붕(직물로 만든 베라리움)을 설치하고 가운데는 둥근 구멍을 두었다네요...
현대에 건축하는 축구경기장이나 종합운동장에서 사용하는 건축구조의 원형인 셈입니다.
콜로세움의 3층에는 곳곳에 이렇게 밖을 내다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습니다.
좀전에 방문했던 포로로마노 유적지와 개선문이 보였어요...
이런 거대한 건축물이 2천년을 지탱해왔다는게 참 대단한 것 같습니다.
외벽의 아치형 기둥들 사이사이에는 원래 인물조각들이 하나씩 놓여있었다는데 지금은
하나도 볼 수 없어 아쉽습니다. 중세에는 이곳이 요새로도 사용되었고, 그후 지진으로 많이
부서졌는데 이때 떨어져 내린 돌들을 복원하지 않고 성당 건축이나 귀족들의 저택 건축용
석재의 채석장으로 사용했다고 합니다. 19세기가 되어서야 교황들의 명에 의해서 석재 대신
벽돌로 대체하는 복원작업을 시작했다네요...
황제들의 공회장 가도에서부터 포로로마노 유적지, 콘스탄티누스 대제의 개선문까지
파노라마 식으로 조망할 수 있었습니다. 개선문 왼쪽으로 이어지는 공원은 네로 황제의 궁전,
도무스 아우레아(황금의 집)가 있었던 곳이라고 기억합니다만 자신이 없네요... ^^;;
타원형 콜로세움의 폭은 최대 188미터, 둘레 길이 527미터, 높이가 57미터, 두께가 12미터고요,
삼층까지 아치형 석주들로 둘러쌓은 구조예요. 예전에는 내부에 모자이크화와 조각상들로
장식이 되어있었다고 하고요, 관객이 일시에 모였다가 퇴장할 수 있게 출입구가 많습니다.
아래층으로 내려와서 무대 높이에서 관객석을 바라보았습니다.
관객이 가득한 콜로세움 안에서 경기와 공연을 해야했던 사람들을 상상하면서...
객석과 무대 아래의 지하 방들까지 감안하면 참으로 견고하고 거대한 건축물인데
로마인들의 건축술도 놀랍지만 그 사용용도는 지금까지도 참 무섭게 느껴지지요...@.@
어쨌거나 그렇게 국력을 집약할 수 있었던 시대상이 역사적으로 특별하게 생각됩니다.
내부의 장식물들은 극히 일부를 제외하고는 남아있지 않지만 가끔 눈에 띄는 기둥장식과
벽화를 보면 콜로세움이 거대함 뿐만아니라 정교하고 아름다운 건축작품이었던 것 같습니다.
비록 지금 남아있는 외양은 초라하고 폐허에 가까운 모습이지만요...@.@
이제 콜로세움 바깥을 돌아 내려와서 '황제들의 공회장 가도'라고 불리는 길로 올라왔어요.
포로 로마노의 바깥쪽 길인 셈인데 이 길을 따라 가다보면 대리석에 부조된 네 개의 지도가
벽에 걸려있습니다. 기원전 753년부터 시작해서 점차적인 로마의 영토 확장을 설명하네요...
사진은 로마제국의 영토가 가장 넓었던 기원후 117년(트라야누스 황제 직후)의 지도입니다.
'황제들의 공회장 가도'에서도 포로로마노 유적을 내려다볼 수 있는 테라스가 있고요,
줄리우스 시저의 공회장 폐허 앞에는 시저의 동상(어두워서 잘 안보이지만...)이 있습니다.
세 기둥이 남아있는 이 폐허는 비너스 신전이 있었던 곳이예요.
이곳에서 길의 맞은편으로는 반원형의 이층 벽돌건물들이 있는데 서기 110년 당시의
트라야누스 황제의 공회장 유적지이고 시장으로 사용하던 곳이라고 기억합니다...
참, 그리고 이곳에서 세베루스 황제 개선문 쪽으로는 로마시대 감옥의 유적도 있었어요.
성 베드로와 성 바울(바오로)이 갇혀있었던 곳이라고 들은 것 같습니다.
포로 로마노 유적지는 그 시대를 상상할 수 있게 하는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는 곳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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